'A Radius of 5 meters' 반경 5미터 'A Radius of 5 meters' 반경 5미터19.02.20-19.02.26정서우 , 최예빈, 경아, 편가현”사물은 사건과 물체를 지칭하므로 어떠한 대상은 자연에 존재하는 물체의 성질은 물론 그 주위에서 발생하는 변화나 운동 모두가 포함되며, 이 자연 현상들로부터 가장 기본적 인 법칙을 탐구하는 자연과학의 기초 학문 원리를 따른다. "우리는 이러한 물리학의 원리 를 한 사람에게 영향력 있는 보편적 거리 5m 내에서 각자의 ‘반경 5미터'를 예술적인 시 각으로 정의한다.개인은 오관으로 관찰이 가능한 대상과 불가능한 미시적 대상에 의해 영향을 받으며 존재한다. 참여 작가들은 각자의 주변을 구성하는 대상의 범주를 5미터로 규정하고, 각자의 경험과 삶의 내용을 토대로 재해석하며 ‘반경5미터' 이론을 제시한다. 이 이론을 바탕으로 작가들은 본인의 반경 5미터를 연구한다.여기서 반경 5미터는 각 개인에게 영향력있는 보편적 거리를 표명하며 이 거리내에서 우리는 눈에 보이는 것 뿐만 아니라 여러가지 형태의 영향을 주고받는다는 것을 물리적 거리 '반경5미터'로 엮어 이야기 한 것이다.이 전시를 통해 날마다 반복되는 생활에 반경 5미터 이론을 이야기함으로써 새로운 시각을 제공하여 잠깐이라도 관객들이 본인의 반경 5미터를 들여다 볼 수 있도록 유도한다.작가 노트<정서우>현실인지 꿈인지도 구분이 가지 않고 해가 지고 있는 것인지 떠오르고 있는 것인지 구분을 할 수 없는 새벽이라는 애매한 시간 속에서 나는 이질감을 느낀다. 이러한 이질감은 부유하고 있는 생각들을 오히려 노골적으로 보여준다.사람들은 주변 환경에서 무엇을 영향을 받고 어떠한 감정을 느끼는지에 대해서 인지를 못할 때가 많다. 자기 자신에게마저 거짓말을 한다. 자신이 무너지고 있는지 기쁨을 느끼고 있는지에 대해 인지하지 못하고 그저 지나쳐간다. 하지만 이러한 감정들은 나의 내부에 쌓여가고 이러한 앙금들은 무의식이 되어 비현실로 나에게 나타난다.분리되어 있다고 생각하는 현실과 비현실은 서로에게 영향을 주며 새벽에서의 모호함이 두 개의 세계를 연결해준다. 현실에서 느낀 감정, 환경, 생각 등이 재해석되고 재구성되어서 재탄생이 되는 시간과 공간을 표현하여 보여준다.모호한 시간 속에서 감각적으로 구체화된 자신의 무의식들을 이제야 겨우 자신과 마주할 수 있게 된다. <편가현>문득, 시간이 참 빠르다는 생각이 들 때가 있다. 재빠른 시간은 우리 주변에 존재하는 모든 것들을 변하게 하며 사라지게도 만든다. 시간이 지나간 것을 알아챈 순간엔 그것이 가져간 것들은 돌아오지 않으며 잡을 수 없다.나는 내가 보는 대상과 순간들이 순식간에 스쳐가고 사라지며 다시 돌아올 수 없는 것을 알기에, 비록 그것들이 나에게 무의미한 것들이라 해도 이를 기록한다. <최예빈>5미터라는 거리에서 마주치는 모든 것들, 사람 감정 사물 병균 이러한 모든 것들을 마주했을 때 나는 그것을 내 안에 온전히 받아들이기 힘들다. 그로 인해 생긴 여러 염증을 이야기한다. 염증은 어떠한 자극에 대한 생체조직의 방어반응 중 하나이다. 나는 염증이라는 큰 테두리 안에 신체적으로 나타나는 염증과 더불어 우울감과 같은 정신적인 자극에 대한 방어반응인 마음의 염증도 포함한다. 대부분의 염증이 아주 작은 씨앗일 때엔 내 안에 생긴 것이니 내가 쉽게 제거할 수 있다고 여기며 대수롭지 않게 넘긴다. 하지만 그 염증은 예기치 못한 크기로 커지고 가늠할 수 없는 깊이로 깊어지며 어느 순간 ‘나’를 집어삼킨다. 염증에 갇혀 헤어 나올 수 없을 정도로 커져간다. 이러한 염증은 사람과 사람 사이에서 주고받는 단 한 단어일 수 있으며 ‘고작’이라는 말이 어울릴 정도의 아주 사소한 것으로부터 시작될 수 있다.세상을 살아가며 만나는 모든 것을 다 수용할 수 없기에 생기는 염증. 내가 감당할 수 없을 크기로 커져 버린 그 염증에 대한 이야기를 구태여 작업으로 꺼내놓음은 고통스럽지만 조금이나마 그 염증을 해소하기 위한 처절한 몸부림이다. <경아>인간이라는 동물로 태어나 매일 폭력의 결과물을 소비한다. 고통을 느낄 수 있는 자에게 가하는 살생이 옳지 않다는 건 인간이라면 본능적으로 알고 있다. 그러나 당신이 죽이고, 강간하고, 납치하는 “인간이 비인도적이라 여기는 행위”에 평생 가담하고 있다면 어떨까? 매일 자연스럽게 소비하고 있는 식품 뒤엔 나 대신 동물을 죽여 준 다른 사람들이 존재한다. 때문에 식탁 위까지 올 수 있었던 것이다. 각각의 접시 위에 즐비하게 늘어진 동물 사체를 바라볼 때마다, 아무런 감정도 느끼지 않는 게 신기할 따름이다. 현대인이 평균 82.7세까지 살며, 매일 하루 세 끼를 먹는다고 가정한다면 약 90556번 이상의 살육에 동참하는 것이라 볼 수 있다. 고기라는 이름으로 불리는 동물의 존재 이유는 과연 먹힘 당하기 위해서인가.사체 일기(2019)를 이루는 작은 화면엔 한 장 한 장 내가 관찰해왔던 폭력을 담아냈다. 반복되는 폭력의 결과물(=사체)에 무방비하게 노출된 감각과 감정은 점점 무뎌진다. 종이를 관통한 바늘구멍은 끔찍한 상황을 묘사하려 드는 데 비해, 재료의 특성으로 생경한 느낌은 전혀 들지 않는다. 이 제한된 표현은 폭력에 대한 무감각을 기록하는 도구로 쓰인다.본능 추정의 원칙(2019)은 고통에 공감하지 않음을 정당화하기 위해 쉽게 “본능”을 들먹이는 논리에 영감받아 제작했다. 등장하는 그래픽들은 폭력에 반응하는 신경 체계를 상징하지만 결국 나만의 추측에 기대 만들어진 이미지일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