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시 서문상처는 정상성을 배격한다. 몸의 면역이나 정신의 방어기제라는 개념이 존재하는 것 자체가 상처를 회복하거나 아예 상처를 입지 않은 상태가 정상임을 증명하는 듯하다. 그런데 과연 정상 상태는 어떤 것인가? 정상적인 인간로 살아가는게 너무 익숙해서 오히려 인간적이지 못한 우리 아닌가?유예림은 과거에 만났던 서로 다른 세 연인이 종아리에 남긴 서로 다른 세 상처를 응시한다.우연히 생긴 이 상처들은 살아있음을 느끼게 하는 증거가 된다. 상처 난 조직의 세포들과 그 세포막을 들락거리는 수많은 무기물들, 그리고 그 주변의 미생물들이 서로 협력하여 상처 부위 위에 새로운 소우주를 형성하고 그게 다시 몸의 일부가 된다. 상처 위에 돋아난 소우주가 다시 몸의 일부가 된다는 건 본래의 몸과 재현된 몸 사이의 성관계처럼 보이기도 한다. 어쩌면 상처 자체도 사랑하는 연인의 침입이라는 점에서 성관계와 유사하며 두 유사 성관계의 양상을 병치하는 과정에서 작품의 기이한 낭만성이 느껴진다. 침입은 정상의 상태를 깨트리지만 우리의 몸은 그런 부정성 조차도 구원의 재료로 삼는다. 살아있음에 피로감을 느끼는 우리에게 상처라는 부정성이 오히려 생의 활력으로 이어진다면, 아마도 새로운 정상 상태는 다른 종과 개체의 침입에 열려있는 상태여야 하지 않을까?응시의 방향은 언제나 몸의 바깥인 세상을 향해있다. 눈은 자아가 아닌 세상을 바라보도록 설계되어있다. 그렇게 세상을 바라보며 살아가다 문득, 자아를 인식하게 된다. 그때 우리는자아의 풍경, 즉 마음을 보려고 한다. 마음을 보려면 어떻게 해야할까? 안타깝게도 시선은 바깥 방향으로 고정되어있다. 그럼에도 나는 나를 ‘응시’하고 싶다. 그 순간 나 밖에서 나를 재현하고자 하는 욕구가 피어난다. 나와 재현된 나 사이의 이항대립에서 어쩌면 내가 입은 상처의 본질을 알아낼 수 있을지도 모른다.오수현은 본인의 작품 전반에 걸쳐 ‘하프 엘프’라는 개념을 표현하는데, ‘하프 엘프’는 실재와 이상, 현실과 환상의 경계에서 살아가는 인간 내면의 이중적 본성을 상징하며 창작자의 재현된 자아라고 할 수 있다. 하프 엘프라는 전제 위에서 작품과 본인을 동일시하며 신체 모형의 일부분에 상처를 입히고 치유하는 과정을 반복한다. 스스로 낸 상처를 다시 치유하는 과정은 처연함을 동반하며 어떤 불가해함을 불러일으키기도 한다. 상처는 현실과 이상의 간극을 배경으로 서로 다른 자아의 충돌 과정에서 생겨나는데, 재현된 자아인 하프 엘프에게 상처를 입히는 과정에서 고통을 외부화하며 마침내 상처를 응시할 수 있게 된다. 그리고 치유의 순간이 오면 자아와 재현된 자아는 화해하며 서로를 맞이하고 진정한 나로 거듭난다.상처를 응시하는 행위는 이렇듯 존재의 일부를 낯설게 하며, 그 자체로 예술에서의 ‘낯설게 하기’와 이어지고, 결국 인간종으로 살아간다는 행위 자체를 다시 생각해보게 한다는 점에서 인류에 대한 성원이자 예술에 대한 지지선언이다. 어쩌면 인간은 타자와 연결되고 싶어서 서로에게, 그리고 스스로에게 파인 틈을 만들고 있는 중일지도 모르겠다.글 고혁민유예림, 오수현파인 틈을 응시하기25.04.02 - 25.04.13Wed-Sun 13:00-19:00Mon,Tues Closed25.04.13 LAST DAY 13:00-16:00WWW SPACE 1 (서울특별시 마포구 망원로 6길 37, 지하1층) @WWW__SPACEhttp://www.wwwspace.krhttp://www.instagram.com/www__spac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