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시 소개작가에게 방은 필수적이다. 방해 없이 사색할 수 있는 곳, 다른 누군가가 아닌 스스로가 될 수 있는 곳. 작가는 그곳에 머문다. 머물며 사색하고, 커피나 차도 마시고, 한숨도 쉰다. 작가는 그렇게 글을 쓰고 그림을 그린다. 방들은 작가를 닮았다. "방들은 저마다 매우 다르다. 조용한 방도 있고 몹시 요란한 방도 있다. 바다를 향해 열려 있을 수도 있고, 반대로 형무소 마당을 접하고 있을 수도 있으며, 빨랫감이 널려 있거나 오팔과 비단으로 화려하게 장식될 수도 있다. 말총처럼 뻣뻣하거나 깃털처럼 부드러울 수도 있다."¹전시의 제목처럼 이들의 그림은 하나의 육면체-방을 만든다. 그림으로 만들어진 방, 혹은 전개도를 채우고 있는 그림들은 순환하는 언어적 유희를 액자로 삼는다. 단어들이 뒤섞이며 서로에게 기대는 낱말 퍼즐이나, 일부터 구까지의 숫자가 서로의 규칙에 기대어 병존하는 마방진처럼, 그림이 만든 방은 서로가 서로에게 기대어 있다. 이들의 방은 “저마다 매우 다르건만”, 어쩐지 그림들은 서로에게 기울고 어깨와 품을 내어주고 있다.서영은 단단하다. 서영의 눈은 또렷이 대상을 바라본다. 시선이 정말 선이라면, 서영의 것은 굵고 선명하다. 시선은 어두운 방을 비추는 빛이 된다. 벽지의 무늬를 드러내고, 나방의 그림자를 만든다. 어둠을 아늑히 여기는 이에게 빛은 때론 짐이다. 눈의 빛은 묻고 밝히고 드러낸다. 마주하는 이의 어깨 위에 내려 앉아 그림자를 걷어낸다. 서영은 누군가의 방을 바라보고 있다. 서영은 그에 대해 생각한다. 그는 밝은 걸 꺼릴까? 그의 눈에 담기는 세상은 어떤 색일까? 그의 현실과 나의 현실을 같을까? 담담하고 아스라이 그려진 빛은 서영의 시선이 발하는 빛이다.선영의 작업은 부드럽고 따뜻하다. 산란하는 빛의 효과들이 그려져 있다. 그것들은 멈춰버린 시간을 만든다. '그 후로도 행복하게 살았습니다'의 결론이 약속된 동화, 매일 혹은 매주, 매달, 저 별세계의 이야기를 끝도 없이 내어 놓는 만화처럼. 우리는 그 속에서 끝이 없고, 결말이 없는², 한없이 연장되는 시간을 경험한다. 선영의 방이 그렇다. 아침의 알람이 10분, 10분, 10분, 계속해서 늘어지며, 꿈도 현실도 아닌 선잠의 시간이 무한히 늘어나듯, 선영의 방은 벗어나야할 공간이자 아늑하고 따듯하게 머무를 공간이기도 하다. 불안하고 두려운 선영을 방은 포근하게 안아준다.아주는 방을 만든다. 그곳을 꾸민다. 언제고 아주를 지나갔던 이들, 그 시간이나 향기를 상자에 담으려는 듯, 그들은 선명하고 뚜렷한 선과 색으로 그려진다. 아주는 그들을 마주한다. 눈을 맞추고 말을 나눈다. 그것은 어쩌면 스스로를 나누어 주는 일이다. 우리는 서로에게 머무를 때, 각자의 조각을 나눠 갖는다.* 아주는 빈 화면에 그의 조각을 남긴다. 보고 싶었던 이와 재회하는 따듯한 소파. 조용히 식기가 달그락대는 식탁. 그날 먹었던 파르페, 그때 봤던 드라마, 그 대화, 벗어두었던 안경, 검은 반점이 피는 목련, 이른 봄의 온도. 아주는 하나의 방을 닫아둔다. 그리고 또 다른 문을 연다. 누군가의 문을 두드린다. 다시 서로를 마주하고 눈을 맞춘다. 서로를 나눈다.서영, 선영, 아주는 이제 어느 방에서 만난다. 그리고 각자의 방 문을 연다. 엷은 빛이 어둠을 걷어내는 방, 끝 없는 아늑함이 기다리는 방, 하얀 눈밭에 선명한 발자국이 남은 방. 이들은 저마다의 방에서 걸어나와 서로의 방문을 두드려 본다.¹ 버지니아 울프(2018), 『자기만의 방』, 박혜원, 더클래식.² 앞에 언급한 '동화의 약속된 결말'은 서사를 끝맺지 못한다. 꼬리를 입에 물고 제자리에서 쳇바퀴를 돌 뿐이다.* …..글 남택민윤서영, 안선영, 정아주'절취선을 따라 접으세요'24.6.12 - 24.6.23Wed-Sun 13:00-19:00 Mon,Tues ClosedWWW SPACE (서울특별시 마포구 망원로 6길 37, 지하1층)http://www.wwwspace.krhttp://www.instagram.com/www__space